6수 끝에 합격한 Relate 팀의 Y Combinator (YC) 이야기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 Y Combinator에 여섯 번 도전해서, 6수 끝에 합격한 Relate 팀의 이야기

6수 끝에 합격한 Relate 팀의 Y Combinator (YC) 이야기

미국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Y Combinator (와이콤비네이터, 줄여서 YC)는 스타트업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모두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투자회사이자 액셀러레이터이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Chat API 기업 센드버드(Sendbird W16)를 포함해 Airbnb (W09), Coinbase (S12), Dropbox (S07), GitLab (W15), Doordash (S13), Stripe (S09) 등이 YC를 거쳐 간 기업들이다.

YC는 점차 배치 규모를 늘려가고 있지만 최근 들어 YC에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모수 자체가 몇 배로 커져서 배치 규모도 덩달아 커진 것일 뿐 합격률은 여전히 1.5~2% 안팎일만큼 YC는 늘 합격하기 까다로운 액셀러레이터였다.

우리 팀을 곁에서 지켜봐 온 사람들은 잘 아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YC의 무려 6수생이다. W20부터 매번 배치 때마다 계속 지원했고, 또 낙방했고, 또 지원해서 이제서야 합격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이번 YC S22 배치에 합격해서 6월부터 San Francisco에 방문한다. 판데믹 이후 YC는 여전히 100% 리모트로 진행되지만, 이번 S22 배치부터는 하이브리드 모델로 온/오프라인 행사와 세션들을 진행하고, 또 SF에 매주 YC 파운더 들의 밋업이 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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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20부터 제출한 지난 6번의 YC 지원서들

YC와 함께 해온 피봇 스토리

우리 팀은 2019년 법인 설립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의 피봇을 거쳐 온 팀이다. 처음에는 Upple이라는 프리랜스 디자이너 마켓플레이스로, 그다음엔 Sketchflow라는 프리랜스 디자인 협업 소프트웨어로, 그다음엔 Pixelic이라는 프로덕트 디자인 협업 소프트웨어로, 그다음엔 Hyperinbox라는 통합 인박스 생산성 소프트웨어로, 그리고 이제 B2B 스타트업을 위한 심플한 세일즈 CRM인 릴레잇(Relate)으로 지난 3년간 우리는 PMF를 찾아왔다.

1년에 단 두 번 펀딩하는 YC의 배치 지원 기간이 맞지 않아 지원하지 않았던 Upple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그동안 거의 루틴처럼 YC에 지원해왔다.

YC의 서류 지원서에 들어있는 질문들은 스타트업으로써 깊게 고민해야 할 좋은 질문들이 많다. 우리의 현황(progress)이 어떤지, 우리 유저들과 매출은 어떻게 만드는지, 왜 우리 팀은 이 아이디어를 선택했는지, 우리 아이디어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 YC 지원서를 완성해서 제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3년간 피봇을 다섯 번이나 하면서, 우리는 매번 작성하는 YC 지원서를 통해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제품인지,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합격 여부를 떠나서 YC에 지원해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회사에 큰 도움이 된다.

피봇에 대해서는 우리 팀에 제일 먼저 투자하신 김범수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 파트너님과 함께 진행한 라이브 영상에서 자세하게 얘기했다.

5번의 지원, 5번의 실패

실패한 각각의 지원서 및 인터뷰에는 실패할만한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지난 지원서와 인터뷰 내용을 복기해봤다. 뒤돌아서 보니 왜 실패했는지 명확하게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왜 떨어졌는지조차 불분명했다.

5번의 탈락 중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고, 아쉬웠던 배치가 있냐면, 우리 창업자(SJ, Arthur, and Chris) 셋 모두 S21에 지원했던 Hyperinbox를 꼽을 것이다.

앞선 3개의 지원은 인터뷰도 받지 못하고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 여러 소프트웨어를 연결해서 하나의 통합 인박스를 제공했던 Hyperinbox는 운 좋게도 인터뷰에 합격해 YC의 CEO 마이클 사이벨(Michael Seibel)과 그 외 네다섯 명의 YC 파트너들과 대화해볼 기회를 얻었다.

제품에 관해서 설명하고, 왜 이게 필요한지 한참 설득하던 중에 사이벨과 파트너들은 본질을 꿰뚫는 듯한 질문들을 던졌다.

"왜 돈을 벌지 않고 있어? 지금 너네의 비즈니스 모델은 B2C SaaS인 것 같은데, 혹시 B2B는 시도해봤어?"
"(4번째) 피봇이후 6개월이 지났는데 여태까지는 미미한 성장을 해왔던 것 같아. 앞으로 어떻게 큰 폭의 성장을 만들어 낼 거야?"

뭐라 답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저 인터뷰가 굉장히 살벌하고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답변을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인터뷰는 끝이 났고, 우리는 그날 손에 일이 영 잡히질 않았다. 그 배치에 같이 지원했던 미국인 친구와도 종일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언제쯤 전화(YC는 합격 시 전화로 알려준다)를 받을지, 혹은 거절 이메일을 받을지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결국 그날은 전화를 받지 못했고 "어쩌면 내일은 전화가 올지도 몰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 9시, "YC"라는 제목으로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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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로부터 받은 거절 메일.

YC의 피드백은 이랬다.

“너희 지금 2~3명 정도가 앱을 잘 쓰고 있는 것은 너무 좋아.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3개월 뒤에 있을 데모데이까지 수천 명의 고객이 돈을 내면서 사용하는 것을 보여줘야 해. 그래야 (시드)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거든.”

결국 돈을 내는 사용자들이 (그리고 많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거절 이유였다.

6번째 지원은 뭐가 달랐을까?

처음 4번의 지원이라고 우린들 대충했을까. 모든 지원서는 심혈을 기울여 답변을 작성하고, 데모 영상, 소개 영상, 그리고 숫자를 더블, 트리플 체크한 다음 제출했다.

우리는 마지막 YC 인터뷰를 통해 들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돈을 내는 고객을 최대한 빠르게 만드는 방향으로 전략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B2B use case를 빠르게 만들 수 있고, 페인 포인트가 명확한 "심플한 B2B 영업 CRM"인 Relate으로 피봇을 결정하게 되었고, 마침내 우리는 2021년 6월에 돈을 내는 고객을 만들 수 있었다.

Relate으로도 바로 YC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5번째 YC 지원을 Relate로 제출했지만, 이번에도(W22) 인터뷰의 기회조차 없이 탈락했다.

S22 배치 지원 링크가 열렸을 때, 사실 지원할까 말까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거의) 루틴처럼, S22 지원서를 빠르게 써 내려갔다. YC 지원서는 1분 분량의 소개 영상도 포함하는데 처음 YC에 지원했을 때는 소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연습해서 찍기도 하고, 스크립트도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만들었다. S22에는 그런 부질 없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YC에서도 하지 말라고 한다) 원테이크로 빠르게 찍어서 제출했고, 결국 합격하게 되었다.

6번째 지원은 뭐가 달랐길래 지난 다섯 번은 전부 탈락하고 이번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걸까? 지난 다섯 번의 지원서와 인터뷰에는 없던 것들이 6번째에는 있었다:

돈 내는 고객

Hyperinbox의 YC 인터뷰 때 들었던 피드백이었기에, 아마도 돈 내는 고객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늘 말하지만, B2B는 결국 돈 내는 고객이 있어야 B2B다. 지난 다섯 번의 지원서와는 달리 S22 지원서에는 적지 않은 수의 고객사들이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고, 돈도 내고 있었다.

고객 리텐션

B2B 소프트웨어의 Product Market Fit (PMF)는 3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1) 돈을 내는 고객이 있는지(Revenue), (2)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는지(Retention), 그리고 (3) 주변 사람에게 우리 제품을 소개하는지(Referral). 우리 제품의 현재 데일리 리텐션은 약 80% 정도 안팎으로 YC 및 실리콘밸리에서 잘 알려진 리텐션 SMB 벤치마크인 60%보다도 더 높은 상황이었다.

명확한 GTM

Hyperinbox 때만 해도 GTM이 그리 명확하지는 않았다. 여러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 Product Manager 혹은 Product Designer 정도가 우리의 ICP (Ideal Customer Profile)이었고, 그마저도 돈 내는 고객이 없는 가설에 불과했다.

Relate은 한국을 포함한 APAC 시장을 우선 타겟하고, 스프레드시트나 노션, 지라 등으로 (어렵게) 영업을 관리하는 수많은 B2B 스타트업들과 중소기업들을 ICP로 삼고 있다. 또한 YC에도 우리 ICP에게 어떻게 Reach 할 것인지 대해서도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간결한 지원서

지난 다섯 번의 지원서를 쭉 읽어보니, 우리가 봐도 떨어질 만하지 않았나 싶다. 사업의 본질과 핵심을 묻는 YC의 질문에 우리로서는 아직 의미 있는 Progress를 만들지 못했던 시기에 지원하다 보니 시원찮은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러다 보니 심플한 설명 대신 꾸밈 많은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도 아직 확실하지 않았던 가설을 가지고 지원해야 했기에 YC의 입장에서는 탈락이 유력했을 것이다.

반면, 이번 S22 지원서에 우리가 쓴 답변에는 꾸미는 단어들이 거의 없다. 핵심만, 그것도 최대한 간결하게 적어냈다. 지원서를 읽는 사람이 2번 3번 읽지 않도록 가장 심플하고 쉬운 설명으로만 구성했다.

간결한 인터뷰 답변

YC의 인터뷰는 10여 분간 사업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엄청나게 쏟아내기로 유명하다. 답변을 애써하다가도 말문이 막히거나 쉽게 답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YC 인터뷰는 탈락이다 (YC의 입장에서 볼 땐, 본질을 묻는 말에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만큼 사업의 본질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Hyperinbox 인터뷰 땐 YC 파트너들의 질문에 쩔쩔매면서 답변했다. 이번 S22때도 어김없이 강도 높은 질문을 받았지만 침착하게 답변을 할 수 있었고, 거의 모든 답변은 1-2문장을 넘기지 않았다.

또 파트너들과 우리가 왜 아직 퍼블릭하게 런칭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지금 매출 성장세보다 훨씬 더 폭발적인 그래프를 그리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기도 할 정도로 생산적인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1.6m(약 20억) 프리시드 투자 유치한 다음에도 YC의 투자를 받은 이유

창업자로서 YC의 스탠다드 딜은 적지 않은 지분을 포기해야 하는 딜이다 (YC는 $500k를 투자하고 고정 7% + 다음 라운드 밸류에 $375k 어치 지분을 가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투자를 받은 이유는 YC에 합류하면 죽을 때까지(표현이 그렇지만...) YC 멤버이기 때문이다. YC 팀은 YC내에서 서로 돕고 도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YC Way”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YC가 가르쳐 주는 것들을 외부 사람들이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YC에 합류한다고 해서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배우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YC에 합류한다는 것은 하나의 특별한 마인드셋을 장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스타트업 = 성장"이라는 마인드셋,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성장하지 않으면 곧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마인드셋이다.

스타트업 성공 "플레이북"은 언제나 늘 정해져 있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빠르게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다. 스타트업하는 사람 중에 이 "플레이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말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수많은 고객에게 파는 스타트업은 플레이북을 실천한다. YC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움직이고, 우리는 그들의 마인드셋을 배우고자 한다. 그게 스타트업의 기본이고 YC의 플레이북이다.

Next Steps

YC 파트너들의 첫 조언은 오는 9월 초에 있을 "YC Demo Day까지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성장을 만들어라."였다.

약 3개월의 시간 동안 다른 것 하지 말고, 성장에만 집중하라는 얘기다. 우리 팀은 6월에 San Francisco에 방문해서 다른 것 하지 않고 YC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매주 동료 YC 창업자들, 그리고 YC 파트너들과 함께 사업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기본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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